리뷰/기타2014. 8. 13. 17:11




관람일 : 2014년 8월 9일 토요일 15:00

장   소 : 대학로 정보 소극장

 

 

오랜만에 연극을 관람하고 왔다. 가벼운 상업극만 보다가 처음으로 보게 된 진지한 연극인데, 극단 청우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02로서 제목은 죽음 (혹은 아님)이다. 원고는 스페인의 극작가 세르지 벨벨에 의해 쓰여졌다.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여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좋은 시나리오 만큼이나 배우들의 분장이나 연기도 좋아 몰입도 잘 되었다. 다만 음악이나 사운드 효과를 통해 조금 더 관객을 몰입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부분, 조금 과도하게 가볍게 처리된 부분, 두 가지는 아쉬웠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몰입해서 보았고, 인상 깊었다.

 

작가가 살던 시대의 스페인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극을 보면서 아마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 친척 간 무관심, 이웃 간의 무관심, 모르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 등 현대 한국 사회와도 비슷한 상황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은 중반까지 별개로 보이는 7개의 에피소드들을 나열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현대인의 삶과 같이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다. 그리고 시트콤과도 같은 우스꽝스러운 상황 전개 후 마지막에는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일면 섬뜩한 죽음으로 마무리 된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대비는 죽음의 강조 위해 의도적으로 가벼운 부분은 가볍게, 그러나 죽음의 순간은 리얼하게 그려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7개의 에피소드 들을 보면서 현대인의 무관심과 쓸쓸함, 죽음의 허무함(?)에 대해 개탄하게 될 때, 상황은 반전된다.

 

그 반전은 극의 가운데, 살인범 에피소드로부터 시작된다. 살인범은 원래 희생자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가 신을 찾으며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을 조롱하듯 놀이 비슷한 것까지 제시하며, 희생자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반전된 에피소드의 비슷한 상황에서, 그는 결국 희생자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왜? 연극 만을 보고서는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기 힘들었다. 단순히 내 이해력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원작을 좀 찾아봐야 될 것 같다. 다만 내가 나름 해본 생각은 다음 두 가지다.

 

첫번째는 첫 에피소드에 액자 식 이야기로 나오는 작가의 시나리오 속 "신은 아닌 그 누군가"와 연관해 생각해 본 것이다. 희생자가 신을 갈구하고 정말 그 신(희생자에게 정말 신이 내렸든 그의 기지였든 간에)의 위엄에 압도되어 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

두번째는 희생자가 처음에는 자신이 가족이 있음을 호소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반전된 에피소드에서는 살인범에게 살인범의 아내, 살인범의 아이로 살아갈 당신의 가족을 생각해 보라는 말에 결국 희생자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

 

나는 두번째가 조금 더 옳지 않나 생각한다. 희생자는 원래 자신의 가족 만을 이야기(관심)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반전된 에피소드에서는 (비록 본인이 살아남기 위한 기지로 내뱉듯 말했을지라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살인범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관심)하면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살인범은 살인이라는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다가 자신의 가족을 생각(관심)하게 되면서 총을 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죽음 (법정에 의한 사형) 또한 피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의 생존은 수많은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위험한 순간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 이렇게 작은,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한 타인에 대한 위선적 관심 만으로도 현대 사회의 비극적인 죽음들을 피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이는 극의 주제, 작가가 하고 싶은 말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두 번째가 맞지 않냐는 것이다.

 

살인범 에피소드 외에도 다른 반전 에피소드를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일면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쩌면 결국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어온 문제에 대한 평범한 해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바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인간 간의 관계 회복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점차 고립되어가는 개인, 가족들을 타인 혹은 타 집단과 다시 관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하지만, 이 작품이 위와 같이 그저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때 즈음, 불현듯 스쳐가는 찝찝함. 극의 마지막, 작가 남편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열린 결말인 듯 답을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작가 부부의 에피소드는 다른 반전 에피소드들과 달리 그 두 명 이외 누구와도 연결 고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작가 남편의 생사에 대한 결말은 결국 죽음일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2시간 동안 보았던 현대인들이 따뜻한 관심으로 서로를 구하는 내용 따위, 그냥 어떤 재능 없는 무명 작가 아내가 남편에게 수다같이 떠드는 이야기 속의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아닐까. 부디 이런 나쁜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기를.. 

Posted by Alejandro Son